예술의 모든 것을 참조하세요. CC NOW CC ME! 의미와 맥락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돼요. 세월을 타야 진정한 가치도 만들어지는 거죠.
- 더레퍼런스 디렉터 김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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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뉴스레터 JANUARY 17,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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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2025년 새해 첫 뉴스레터로 인사드리는 객원 에디터 예은입니다. 작년 11월, 삼성디자인교육원의 졸업작품 전시를 준비하던 중, 인터뷰를 위해 처음으로 더레퍼런스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아담한 북 라운지 공간의 둥근 테이블에 앉아 더레퍼런스의 시작과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그게 벌써 작년이라니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17년간 한 길만 걸어온 디렉터의 이야기는 마치 흥미로운 모험담 같으면서도, 따뜻한 동화처럼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는데요.
여러분에게 더레퍼런스는 어떤 공간인가요? 저에게 이곳은 차분하고 깊이 있는 분위기로, 마치 겨울바다 앞 고요한 모래사장에 서 있는 듯한 몰입을 선사하는 장소랍니다. 2025년의 첫걸음을 내딛으며 새해 인사와 함께 객원 에디터로서 더레퍼런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본 글은 삼성디자인교육원 졸업작품을 위해 진행했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from. 객원 에디터 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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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디자인교육원에서 2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 마지막 디자인 작업이라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제 답은 바로 ‘Port 8080’이었습니다. 학부 시절,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며 전시와 기록에 관심을 두었던 저는 ‘전시 자체를 기록하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전시가 왜 계속되어야 하는지, 기록을 모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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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que]
‘독립서점’에 집중해 보고 싶었습니다. 공익성이 의무적이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공익성을 가지고, 거대한 자본에 의존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독특한 공간.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제가 가진 의문에 먼저 다가간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Port 8080을 시작하며 제가 내린 독립서점의 정의는 '문제집을 취급하지 않는 모든 서점' 이었습니다. 정의를 내리고 보니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할지 분명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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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더레퍼런스 서울
독립출판과 지역서점의 시장은 확장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진이라는 장르를 주목하는 공간은 부족합니다. 이 공백 속에서, 아티스트가 참고(reference)할 만한 도서를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 현재는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대중까지 그 층을 넓히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2호점을 운영하는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신데요.
디렉터ㅣ더레퍼런스는 2007년 사진 잡지 IANNBOOKS를 창간하면서 자연스럽게 출발했어요. 당시 독립출판 시장은 초기 단계로, 창작자들이 독립출판이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관점을 선보이던 시기였죠. 독립출판물들은 제각기 컨디션이 달라 대형 서점에서 쉽게 유통되기 어려웠어요. 대안으로 지역 서점들이 등장하면서 작은 마켓을 형성되었고, 이런 흐름이 오늘날의 언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이어진 것이죠. 하지만 사진이라는 매체는 여전히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장르가 아니었어요. 초기의 독립서점이나 지역서점들조차 사진책은 취급하지 않았죠. 이런 환경 속에서 더레퍼런스는 “예술가의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며, 참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자”라는 모토 아래서 시작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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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라는 이름은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의도를 담아 선택했어요. 앞에 ‘The’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일반적인 레퍼런스와 구별되는, 특정 주제를 의식한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죠. 정확한 명칭은 The Reference Seoul이에요. 지역성을 가미한 네이밍이라고 할 수 있죠. 요즘 '서울'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뭐든 주목도가 올라가는 것 같아서 신기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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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레퍼런스'라고 불리는 것들을 참조하게 되는데, 너무 많으면 내 작업이라고 하기 어려워지고, 너무 적으면 굳이 레퍼런스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더레퍼런스는 전시, 책, 그리고 공간 그 자체로서 레퍼런스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더레퍼런스가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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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서점 그 이상의 가능성
디렉터ㅣ더레퍼런스는 매년 약 10~12개의 전시를 기획하며, 그중 4개 정도는 깊이 있는 기획 전시로 진행합니다. 상반기에는 책과 연계된 전시를, 하반기에는 매체 중심의 담론 전시나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 외에도 워크숍, 아티스트 북토크, 강연 등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죠. 2018년 개관 전시로 진행했던 ⟪Asia Art Book Library⟫를 통해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아트북을 선보이기도 했고, 2022년엔 세계적인 사진 잡지 ‘아파쳐Aperture’에서 매년 여는 포토북 어워드 《2022 Paris Photo – Aperture Foundation PhotoBook Awards》 순회전을 저희 공간에서 진행했어요. 책이라는 물성을 조금 더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했었죠. 더 나아가 사진이라는 매체와 더불어 뉴미디어의 새로운 흐름에 동참하면서 실험적인 예술 사진 또는 미디어 전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전시를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이 전시가 왜 이 공간에서 열려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과 당위성을 확립하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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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 is the New Oil⟫이라는 전시가 기억에 남아요. 자본주의 시대에 데이터가 가진 힘과 권력, 그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영향을 시각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다시 톺아보는 전시였어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 하나하나가 훌륭하기도 했고, 설치 방식과 구상 부분에서 전위적이지만, 각기 다른 매체를 활용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서로 공명했던 전시라고 생각해요. ⟪GOOD BYE PHOTOGRAPHY⟫라는 전시도 소개하고 싶은데요. 신진 작가들과 함께한 전시로, 밀레니얼 세대에게 사진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전시였어요.
전시를 소화하는 건 보는 이들의 몫이라, 그때 전달된 의미나 울림은 관람객분들께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항상 공간 운영을 할 때 아쉬움이 남아요. ‘레퍼런스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 레퍼런스가 많지 않네.’라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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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시 공간과 차별화되는 운영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3~4년 동안은 신진, 중견 작가들의 작업에 주목해 왔는데, 올해부터는 중견 이상의 작가들에 대해 연구하면서 소개할 예정이에요. 동시에 전시의 밀도를 높이려고 준비 중이죠. 지금까지는 실험적인 작업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약간 다른 시각으로 빈틈이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어요.
사진 매체는 과거에 비해 다소 소외된 측면이 있어요. 연구와 소개가 부족한 작가들, 아직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훌륭한 작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숨겨진 원석의 작가 분들의 작업을 천천히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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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ersion]
2024년에 많이 쓰인 단어 중 하나를 꼽자면 ‘성인 ADHD’가 떠오릅니다.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이니, 몰입은 더더욱 힘든 일이죠. 집중은 외부에 대상을 두지만, 몰입은 내부에서 이루어집니다. 더레퍼런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공간에 몰입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방문해 보면 스스로 이곳에 빠져든다는 느낌도 받죠.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몰입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아니면 더레퍼런스가 몰입을 끌어내는 공간인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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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ㅣ본점은 아트북을 비롯해, 현대미술 이론서 위주의 서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SeMA 지점은 넓은 범위의 관람객층을 고려해 예술 입문서, 소설, 에세이 같은 친근한 책들 소개하고 있어요. 큐레이션 방식도 달라요. 효자점은 아시아 포토북이나 다양한 아트북이 더 돋보이고, SeMA 지점은 작가로 활동하는 북큐레이터분이 아티스트의 시각으로 제안하는 북큐레이션이 매력적이죠.
더레퍼런스 SeMA에서는 미술관 전시랑 연계된 매대를 구성하기도 해요. 전시와 연동되는 책을 찾는 수요가 종종 있거든요. 큐레이션 포인트를 책마다 설명서를 하나씩 붙이는 건 개인적으로는 지양하고 있어요. 책에 설명이 붙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그 책을 직접 소개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트북 서점이라는 곳 자체가 하나의 예술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책마다 다 설명서를 붙이면 책도, 공간도 너무 복잡해지지 않을까요? 책은 그냥 그 자체로 완성된 덩어리인데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책을 소개하는 건 오히려 사람의 역할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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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층에 위치한 더레퍼런스 S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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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SeMA에서 진행한 영국 아트북 출판사 Thames & Hudson 75주년 팝업 행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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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지속성의 의미
디렉터ㅣ더레퍼런스는 특정 장르에만 집중된 공간이 되고 싶진 않아요.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는 교집합 같은 공간이 되고 싶어요. 사진과 영상, 사진과 음악처럼 다른 장르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하고 있어요. 그냥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는, 틈새를 메우는 그런 역할이랄까요.
요즘 흥미롭게 생각하는 단어가 있어요. '전통'이라는 말인데요. 우리가 흔히 '원조 떡볶이', '50년 전통'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왜 이런 표현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걸까요? 한국 사회에서는 시간을 버틴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척박하다는 뜻일지도 모르죠.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전통을 이어가기보다는 늘 새롭게 시작하고 개화를 추구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를 가지게 된 환경에 살고 있죠. 이런 배경 때문에 '지속'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늘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변화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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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시장 역시 마찬가지예요. 해외 유명 출판사들은 대체로 80년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들이 많아요. 반면에 한국 출판은 대부분 1940년대 이후에 생겨 비교적 역사가 짧죠. 이건 단순히 큰 출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50년 전통 떡볶이' 같은 소규모 가게조차도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하는 것 자체로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잖아요. 크기를 넘어서는 존재 가치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출판사뿐만 아니라 서점도 마찬가지죠. 의미와 맥락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돼요. 세월을 타야 진정한 가치도 만들어지는 거죠.
제안, 독자에게 한마디 디렉터ㅣ“한 권이라도 사보세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여러분의 서가에 꽂힌 책이 관심사를 대변해 줍니다. 관심사를 천천히 살펴보고, 책으로 공간을 채워 보세요. 잘 채워진 책장. 멋있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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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와 지혜를 상징하는 푸른 뱀의 해를 맞아, 구독자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설문조사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소중한 의견을 전해 주시면, 앞으로 더 나은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 중 다섯 분을 추첨하여 더레퍼런스 에코백을 선물로 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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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는 어떤 의미인가요?
‘참조하라’는 뜻의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약자입니다
아티스트처럼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공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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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4길 44, 2F T. 070-4150-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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