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모든 것을 참조하세요. CC NOW CC ME! 〈PUT MY FINGER IN THE PORTAL〉, 2022 ©주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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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뉴스레터 JANUARY 31,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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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들어오는 너희, 모든 희망을 버려라
『도로헤도로(ドロヘドロ)』에서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문’은 마법사 세계와 인간 세계(홀 hole)를 연결하는 통로예요. 문은 물리적 통로이면서, 마법사만이 가진 권력과 통제의 상징이죠. 『도로헤도로』에서는 문만 열 수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희망찬 설정이죠? 그러나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문을 열고 인간 세계를 급습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마법을 위한 실험체로 삼아요. 강자가 약자의 세계에 침입하는 장치가 되죠. 그러나 약자를 침입하기 위해 열렸던 문은, 주인공 카이만 일행이 문을 통해 마법사 세계를 급습하기 시작하며 그 의미가 달라져요. 이처럼 문은 폭력의 시작이자, 전복의 시작이에요. 만화는 문과 문을 끊임없이 통과하고, 세계를 뒤집으며 카오스를 향해 달려가요.
『도로헤도로』의 문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의 문’과 겹쳐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단테가 말하는 ‘지옥의 문’이 인간 내적 절망과 고통의 경계를 상징한다면, 『도로헤도로』에서 문은 차원을 넘나드는 물리적 장치인 동시에 폭력과 무질서가 분출되는 통로예요. 이 통로를 넘어서는 순간 『신곡』의 지옥처럼 무질서하고, 공포스러운 상태가 펼쳐집니다. 문을 넘어서는 이들은 “누가 더 많이 쓰러뜨리는지 내기할까요?" 라는 잔혹한 농담을 할 만큼, 그 너머엔 혼돈만 있을 뿐이죠. 이렇듯 『도로헤도로』에선 문을 통해 차원의 경계를 넘는 마법사와 문을 열지 못하는 인간 사이에서 ‘힘의 우위’를 겨누는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구조를 드러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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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레몬 옐로우가 사라졌다〉, 2023 ©주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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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는 마법일 뿐이다
만화 속 마법사들은 ‘문’을 통해 인간 세계로 넘어와 각종 잔인한 실험을 합니다. 실험체가 된 인간 입장에선 이 모든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에 ‘저주’라고 말하죠. 예를 들어 초반부에 등장하는 피해자 병동에서는, 계속되는 마법사들의 실험에 인간은 끝없는 공포에 사로잡히죠. 이해할 수 없는 강한 존재들의 폭력에, 인간들은 그저 무기력하게 이 상황을 재앙이자 저주라고 받아들여요.
아시아 문화권에서 ‘저주’는 흔히 인과의 규칙에 의해 가해자에게 돌아가는 인과응보의 성격을 가져요. 저주 행위를 하는 자 또한 벌을 받죠. 그러나 『도로헤도로』 세계관에선 그런 인과관계가 무의미해요. 인간이 저주라고 여겼던 것은 그저 마법사의 마법 실험일 뿐이죠.
이건 인간에게“벌레가 돼라!” 라며 마법을 실험하곤, “안심해. 난 곧 돌아갈테니까. 연습량을 모두 달성했거든.” 이라고 말하는 한 마법사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어요. 마치 폭력엔 이유가 없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잔혹함만이 남는 것 같죠. 저는 이 장면을 통해 ‘저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어요. 나에게 가해진 상황을 저주라 생각하지 말고 거대한 힘의 역학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저주의 원인도, 해결법도 알 수 있을 거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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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지 안드라지(Oswlad de Andrade)의 〈식인종 선언(Manifesto Antropófago)〉(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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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으로 확장된, 모두가 빌런인 세계
『도로헤도로』는 ‘카이만(Kaiman)’과 ‘니카이도(Nikaido)’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절대 선’의 개념은 없어요. “내 머릿속에 있는 녀석이 누구인지 꼭 알아내겠어.” 도마뱀 머리를 한 주인공 카이만이 저주(=마법)의 실마리를 찾아 헤매며 종종 하는 말이에요. 마치 피해자의 처절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반전이 있답니다. 명심할 건 이 세계에선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일상이라는 거죠.
하야시다 큐의 후속작 『대다크(大 ダ ー ク)』는 전작보다 훨씬 명확하게 '모두가 빌런'인 세계관을 펼쳐내요. 『대다크』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지만, 작화와 설정은 원시적이고 야만적이에요. ‘식인’이라는 테마가 전면에 드러나는 동시에, 기계 장치나 우주선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이 함께 존재해요. 이처럼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 하야시다 큐 세계관의 매력이죠. 또한 작가는 주인공 '자하 산코'의 뼈를 차지하면 어떤 소원도 이룰 수 있다는 기괴한 설정을 만들었어요. 이 때문에 주인공의 삶은 굉장히 험난합니다. 이런 전제는 마치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의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에 등장하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7개의 구슬'처럼 사물에나 붙을 법한 설정인데, 인간의 뼈를 취해야 가능하다는 점은 굉장히 기이하죠. 기이함은 인간 형체의 사신 '사마다 데스'가 인간을 잡아먹는 장면에서 극대화 됩니다. 이런 일련의 장면들은 ‘식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이 점은 동시에 철학적·형이상학적 상상력을 자극해요.“우리가 잡아먹는 것은 정말 음식일 뿐일까?” 만화 『대다크』를 보며 제가 던지는 질문이에요. 이 질문 속에서 브라질의 시인이자 예술가인 오스왈드 지 안드라지(Oswlad de Andrade)의 〈식인종 선언(Manifesto Antropófago)〉(1928)이 떠올랐어요. 식인종 선언은 살해당한 ‘적’을 먹음으로 그의 힘을 얻고, 또 속죄하게 된다는 내용이에요. 그는 ‘식인’을 비유적으로 사용해요. 유럽이나 미국 등 외부 문화를 먹어치운 뒤 소화해서, 주체적인 브라질 문화로 만들자고 주장하죠. 일본이나 미국 문화가 유입된 후의 K-컬쳐를 생각하면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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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T MY FINGER IN THE PORTAL〉, 2022 ©주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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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둠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야시다 큐 작품에 등장하는 약자는 ‘불쌍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에요. 일상이 폭력인 세계에서 그들 역시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해 때론 잔인해질 수밖에 없죠. 그들은 복수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 남아요. 이러한 구조는 SF와 판타지 장르가 가진 선입견을 부수는 힘과 맞닿아 있어요. 권력 구조가 끊임없이 뒤집히고, 누구도 ‘안전’하거나 ‘선량’하지 않은 세계. 이처럼 하야시다 큐의 작품세계는 폭력, 생존, 인간 본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해체하죠. 이는 철학자 퀭텡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가 말한 초혼돈(hyper-chaos), 절대적 우연성(absolute contingency)개념과 같이 야만적 가능성의 공간을 상상하게 해요.
또 『도로헤도로』와 『대다크』는 SF·다크 판타지가 결합한 극단적 상상력을 통해, 혼돈과 폭력이 난무하는 지옥의 입구로 작동해요. 단테의 『신곡』에서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Lasciate ogni speranza, voi ch'intrate).” 라고 했던 것처럼, 하야시다 큐의 문을 통해 들어가는 독자 앞에는 구원이 아닌 더 깊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죠.
모두가 빌런인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질문은 ‘이 어둠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예요. 이 작품들을 통해 어떤 생각과 대답을 하시게 될지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문’이라는 경계 너머에 어떤 광기가 도사리고 있는지 살펴봤어요. 굉장히 수위 높은 장면으로 인해 자세한 묘사는 줄였으니 직접 보시길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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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도서
하야시다 큐(글, 그림), 서현아(번역). (2010-2019). 도로헤도로. 쇼가쿠칸, 시공사, 하야시다 큐(글, 그림), 서현아(번역). (2020~연재 중). 대다크. 쇼가쿠칸, 시공사, 단테(글), 김운찬(번역). (2021). 신곡(La Divina Commedia), 열린책들, 오스왈드 지 안드라지. (1928). 식인종 선언(Manifesto Antropófago), 퀑탱 메이야수 (글), 엄태수(번역). (2011).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 이학사, Graham Harman. (2011). Quentin Meillassoux: Philosophy in the Making. Edinburgh University 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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