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모든 것을 참조하세요. CC NOW CC ME! 도쿄 가메아리 철도 아래를 점거하다. ©Daisuke Shima
"SKWAT의 공간은 ‘무엇이 채워지느냐’보다는 ‘어떻게 열려 있느냐’가 더 중요해요."
- 나카무라 게이스케, 건축설계사무소 다이케이 밀스 디렉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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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동쪽, 가메아리는 고층 빌딩 대신 정겨운 주택과 오래된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입니다. 이 평범한 일상 풍경 속, 유독 시선을 끄는 공간이 하나 있는데요. 철로가 지나는 고가도로 아래 자리한 이곳은, 처음엔 책이 가득 쌓인 창고처럼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희귀 아트북과 음반, 은은한 커피 향, 그리고 동네만의 리듬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 이 공간의 이름은 ‘SKWAC’입니다.
SKAC는 도쿄의 건축설계사무소 다이케이 밀스(Daikei Mills) SKWAT팀과 아트북 유통사 트웰브북스(twelvebooks), 레코드 가게 VDS, 카페 TAWKS가 함께 만든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단순한 서점을 넘어, 책과 사람이 모이고 머무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는 하나의 문화 실험실이라 할 수 있어요.
지난 4월, 더레퍼런스는 서울을 찾은 SKWAT 팀과 짧지만 인상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과 공간, 도시와 문화에 대한 감각을 나눈 그 대화는 곧 이 뉴스레터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도쿄 철도 아래에서 피어난 새로운 문화의 틈, SKWAT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전해드립니다.
from 디렉터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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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도심의 유휴 공간을 점거해 실험을 펼치는 SKWAT은,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처럼 느껴집니다. 다이케이 밀스에게 SKWAT은 ‘공간’인가요?
SKWAT은 단순한 공간이라기보다, ‘도시 내 유휴 공간을 일정 기간 점유하고 이를 대중에 개방하는 하나의 운동’에 가까워요. 전시, 출판, 상품 판매, 강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소 만들기’와 ‘메시지 전달’을 시도하고 있고, 온라인이나 공중파 등 물리적 공간도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어요. 이 모든 흐름은 ‘불완전한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전환의 과정’에 기반하기 때문에, SKWAT을 공간으로만 정의하긴 어려워요. 물론, SKWAT의 시작이 건축설계사무소 다이케이 밀스이기에 ‘공간을 다루는 일’이 중심이에요. 저희에겐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도 영향력 있는 실천 방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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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uke Shima
그래서 프로젝트명도 ‘공간을 점거하다’라는 뜻의 ‘squat’에서 가져온 거군요. 현재 위치도 꽤 독특한데요. 오모테산도에서 가메아리의 철도 고가 아래로, 이사한 지는 1년 반쯤 되었다죠? 이름도 SKAC(SKWAT KAMEARI ART CENTRE)로 바뀌었는데, SKWAT의 확장된 개념으로 보면 될까요?
네, 말씀하신 대로 SKWAT은 유럽과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스쿼팅(squatting)’ 문화에서 차용했어요. 비어 있거나 버려진 공간을 점거해 자율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활동에서 영감을 받은 거죠.
오모테산도와 가메아리는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라요. 그에 맞게 콘텐츠 구성과 운영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현재 가메아리에서는 지역 주민과의 접점을 늘리고, 보다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어요. SKAC는 SKWAT의 새로운 국면이라기보다, 다양한 장소 특정성을 실험하는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그때그때 장소의 맥락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 저희 방식이에요.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도 많은 걸로 알아요. 어떤 활동을 해오셨나요?
아침 8시 30분부터 까페에서 주민들을 맞이해요. 오후에는 다른 동네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보니 동네 주민들이 한산한 분위기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두죠. 일본 전통 행사도 정기적으로 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떡메치기 행사가 있는데, 그런 날엔 모든 떡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시간을 가져요. 외부 공간에 벤치도 많이 설치하죠. 가메아리는 어르신 거주 비율이 높거든요. 출입구 쪽에 벤치를 놓으면 예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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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옛 세탁소 건물에 ‘Thousand Books’를 열었다. ©Daisuke Shima
게릴라 형식으로 운영되던 초기 SKWAT 공간들 이후, 2020년 5월 오모테산도에서 다시 문을 열며 아트북 유통사 트웰브북스와 협업을 시작하셨죠. 두 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하라주쿠에서 VACANT라는 대안 공간을 함께 운영하던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이에요. 트웰브북스의 설립자 아츠시 하마나카(Atsushi Hamanaka) 씨와 VACANT의 멤버로 오래 활동했죠. 개인적으로 그의 아트북 셀렉션을 정말 좋아해요. SKWAT의 활동에서 ‘예술과의 접점’을 넓히는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아트북은 단순히 책을 넘어서 예술 작품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의 철학과도 잘 맞았어요. 세상에 덜 알려진 아트북을 소개하고 알리는 것 또한 SKWAT의 실천 방식 중 하나입니다.
SKWAT의 공간은 마치 거대한 창고처럼 느껴집니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공간을 만든다’는 철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SKWAT의 활동에서 ‘가치 전환’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예요. 그래서 우리의 공간을 접한 사람들이 “어디선가 본 적은 있는데, 뭔가 다르다?”라는 기시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어요. 익숙함 속에 낯섦이 공존하는 감각, 곁에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을 주는 정서, 그런 감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이를 위해선 ‘최소한의 개입’이 필요해요. 공간을 과하게 디자인하기보단, ‘사용자 스스로가 개입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는 거죠. 그렇게 경험자의 참여가 더해질 때, 공간은 진정한 힘을 갖게 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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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를 엮어 만든 창고형 공간으로 아트북, 음반 등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 ©Daisuke Shima
가능한 한 기존 건물에서 사용하던 자재나 구조를 그대로 재사용하고, 때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을 취해요. 공간은 단순하면서도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SKAC 프로젝트에서는 비계(足場, scaffold)를 사용해 공간의 뼈대를 구성해 봤습니다. 비계는 선반과 수납, 동선 역할까지 겸하는 구조물로서 기능성과 효율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요. 이를 통해 트웰브북스의 아트북, VDS의 레코드가 자연스럽게 쌓이는 ‘창고형 공간’을 만들 수 있었죠. 결국 SKWAT의 공간은 ‘무엇이 채워지느냐’보다 ‘어떻게 열려 있느냐’가 더 중요해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넘어, SKWAT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기능하는데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interaction),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문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상호작용’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철학이에요. 사람들이 공간에 모이고, 대화를 나누고, 무언가를 움직이거나 바꾸는 그 모든 행위가 일종의 ‘인터랙션 아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순간을 제어하거나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새로운 상호작용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결국 SKWAT은 사람들로 완성되는 공간이에요.
도쿄에 있는 유휴 공간 중에서도 SKWAT에게 적합한 공간으로서 중요하게 살피는 기준이 있나요?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을 법한, 가장 가치가 낮아 보이는 공간이야말로 SKWAT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예요. 그런 공간은 기존의 기능이나 역할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새로운 상상력을 덧입힐 수 있는 여지가 크거든요. SKWAT은 언제나 그런 틈에서 시작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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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으로 꾸려진 공간 프로젝트 ‘THE TOKYO TOILET PARIS’. ©Daisuke Shima
아트북 콘텐츠 외에도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세계 여러 도시에서 3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해요. 클라이언트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순 없지만, 도시를 설계하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부터 대형 상업 시설, 패션 브랜드의 매장 디자인과 가구 브랜드와의 협업까지 다양한 규모로 유럽과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SKAC에는 트웰브북스 외에도 LEMAIRE, PARK 등 서로 다른 조직이 공존해요. 여러 창작자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콜렉티브’인가요, 아니면 각자가 독립적으로 점유하면서 느슨한 시너지를 만들어 가는 구조인가요? SKWAT은 각자가 독립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면서도, 느슨한 시너지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다이케이 밀스가 전체 공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만, 개별 팀과의 계약은 단순 임대차 방식이 아니에요. 모든 팀이 공간 전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서로의 활동에 자연스럽게 개입할 수 있도록 열어 두고 있어요. 그런 방식이 책임감 있는 운영을 가능하게 합니다.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팀원들과는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를 하며 관계를 단단히 유지하고 있어요.
SKWAT은 고정된 형태 없이 도시 공간을 전유하며 일종의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여요. 교란자나 조율자, 제안자 중 어떤 위치로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혼란을 일으키는 교란자이자, 동시에 조율자이고 제안자입니다.
SKWAT의 방식은 일종의 ‘편집적 큐레이션’, ‘관계 설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책, 브랜드, 공간, 작가, 관객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사실 디자인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디자인을 하려고 하면 형식적으로 변하게 되고, 결국 이미 존재하는 사례들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언제나 비형식적인 것, 인간으로서의 원초적 감각을 우선하고 유기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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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2층 서점에서 이번 뉴스레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SKWAT 팀
만약 이 공간에 ‘책’이 없다면, 지금의 SKWAT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책이 없더라도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요. 다만 SKWAT에 있어 아트북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이고, 절대 빠져서는 안 될 하나의 조각인 건 확실해요.
마지막으로 트웰브북스와의 협업을 넘어, SKWAT과 아트북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가요?
아트북을 통해 ‘예술’을 보다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공유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어요. 처음부터 예술로 진입하는 대신, 사람들에게 익숙한 ‘책’, ‘서점’, ‘라이브러리’라는 포맷으로 시작하는 거죠. 우리는 이 공간을 통해, 책을 매개로 예술을 서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흐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회성 이벤트보다는, 매일 이 공간을 찾는 이들이 다양한 예술 서적을 접하고, 그것이 점차 감각과 인식으로 스며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SKWAT은 언제나 그런 ‘자연스러운 접근’ 속에서 예술이 삶과 맞닿을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책이라는 매체 안에 담아두고 있는 거예요.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예술과 일상을 잇는 방식, 정말 깊이 공감되네요. 더레퍼런스도 왜 갤러리가 아니라 ‘서점’이고, ‘책을 만나는 공간’이어야 하는지를 SKWAT의 이야기를 통해 대신 설명한 것 같아 무척 의미 있는 인터뷰였어요.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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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는 어떤 의미인가요?
‘참조하라’는 뜻의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약자입니다
아티스트처럼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공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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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4길 44, 2F T. 070-4150-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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