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모든 것을 참조하세요. CC NOW CC ME! 더레퍼런스의 시작. 2018년 효자동에 문을 열다.
"10년을 앞두고, 조용히 다음 단계를 준비합니다."
- 더레퍼런스 디렉터 김정은 |
|
|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FEBRUARY 7, 2026 |
|
|
2026년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라고 합니다. 정오의 열기를 품은 채 대지를 달리는 붉은 말. 출발 직전의 경주마처럼, 조금은 들뜨고 약간은 긴장된 상태지만 무엇보다 에너지를 응축하는 2월이네요.
구정 설을 앞 두고, 2026년의 첫 인사는 CC NOW 뉴스레터의 문지기인 제가 먼저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올해는 더레퍼런스가 9년 차에 접어드는 해이기도 하고, ‘예술과 전시가 있는 독립 공간’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지나왔는지 잠시 정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최근 『실패를 통과하는 일』(박소령 지음, 북스톤 발행, 2025)을 읽으며, 저 역시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달리는 적마가 지치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듯, 더레퍼런스 또한 지난 시간을 어떻게 통과해왔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죠.
그래서 이번 호는 지난 8년을 응축해 정리한 기록이자, 2026년의 문을 여는 글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from 디렉터 김정은
|
|
|
예술을 ‘지속’한다는 일
예술을 사업으로 이어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아티스트처럼, 잡지 발행인으로 출발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를 품고 2007년, 사진 출판을 중심으로 이안북스를 시작했죠. 초창기의 믿음은 단순했습니다. ‘잘 만든 책이라면 결국 독자에게 닿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모하게 달렸어요. 혼자 도쿄로 날아가 일본 FOIL 출판사 대표에게 공동 출판을 제안했고, “아시아 사진을 함께 맵핑해보자”고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예술 출판의 전 과정을 일본에서 배울 수 있었고, 롯폰기 츠타야(TSUTAYA) 서점을 비롯해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뉴욕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등 미술관이나 전문 예술 서점에 IANN 매거진이 깔리기 시작했죠. |
|
|
IANN 매거진 10주년 기념호 『Vol. 9 Asian Bookmakers Society』.
문제는 한국이었습니다. 대형 서점에서는 한 달이 지나면 매대에서 잡지가 교체되었거든요. 2000년대 한국은 월간지가 대세이던 시절이에요. 계간지나 반년간지가 익숙치 않던 때, 독립출판 시장이 태동하면서 언리미티드 에디션 북페어를 통해 1인 전문잡지가 등장했죠. 흥분된 상태로 그렇게 몇 년을 버텼지만 달리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통장 잔고는 줄고, 일본에 갚을 빚은 늘어나는 걸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예술과 사진, 그리고 그에 대한 교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를 받쳐줄 구조가 절실히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죠. 그중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가 예술 전문 서점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예술의 문턱은 높았고, 많은 이들이 책 한 권 펼치는 일조차 어렵게 느끼던 시기에 마침 서촌을 중심으로 이라선, 더북소사이어티 등 디자인·건축 기반의 공간들이 모이기 시작했죠. 그 변화를 빠르게 읽은 건 다행이었어요. 반대방향으로 도망가는 대신 미래에 투자하는 선택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다만 예술가적 마인드는 버리고 사업가로 마인드 셋을 바꿔보자고 다짐했죠.
그렇게 ‘예술과 전시가 있는 서점, 더레퍼런스’라는 이름으로 효자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자. 아직 달릴 힘은 있잖아!"
2018년 서촌 효자동에 첫 문을 열었고,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층에 두 번째 공간을 열었습니다.
|
|
|
어느덧 9년차를 맞이한 효자동 본점(좌). ©Hyeonki Yoon,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층에 들어선 두 번째 공간(우).
독립 공간은 종종 ‘의미 있는 공간’으로 소비되곤 합니다. 사진으로 남고 기록으로 공유되며 그 자체로 멋있게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지속은 낭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시스템과 구조가 없다면 지탱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한 해를 넘길 때마다 3, 6, 9를 세는 일이죠. 이 숫자가 다가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 시기를 넘기면 성장이다.’ 그리고 올해, 9라는 숫자가 다시 도래했습니다.
연간 전시 수는 줄이되, 기획의 밀도는 높일 수 있을지 공간은 줄이되, 비전은 더 명확해질 수 있을지
10년이라는 또 하나의 고개를 넘기 전, 이번에는 ‘질주’ 대신 ‘속도를 낮추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
|
|
코로나 기간에 열린 OPEN PT 2020(좌), 2021(우). |
|
|
≪참조점 ARTISTS’ BOOK RESEARCH II≫, 2023. |
|
|
≪뉴-픽쳐스 New Pictures≫, 2025.
|
|
|
≪쏘-리얼, 써리얼 So-real, Surreal≫ 연계 아티스트 북 워크숍. 진행: 치가 켄지(Kenji Chiga). |
|
|
서소문점을 채웠던 가구는 의성펫월드에 기증되었다.
유통은 낭만이 아닙니다
더레퍼런스 x SeMA는 계약 만료로 운영 사업을 마무리했지만,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미술관 안에 있는 서점’이라는 조건 안에서 할 수 있는 시도는 거의 다 해본 거 같거든요.
첫해는 코로나 시기였어요. 2호점을 열자마자 두 달 가까이 영업을 하지 못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관이 닫혀 있던 동안, 효자동 본점을 찾는 방문객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큰 대로가 막히자 골목이 살아난거죠. 공간은 때로 예상과 다르게 작동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방문객은 더레퍼런스 × SeMA를 ‘미술관이 운영하는 서점’으로 인식했습니다. 더레퍼런스라는 이름이 익숙해지기까지는 3년이 걸렸죠. 우연처럼 보이지만, 또다시 3, 6, 9의 숫자가 겹쳤습니다. 5년 동안 함께한 미술관내 서점에서 일한 스태프들은 수차례 바뀌었지만, 매번 그들의 적극성은 큰 힘이 되었죠. 점차 독립 출판사와 개인 제작자들과 더 긴밀히 연결했고, 가능한 직거래 유통 경로를 넓혔습니다. 북 큐레이션도 조정했어요. 예술서에 머물지 않고 교양·인문·철학으로 확장해갔지요. 성과는 서서히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여기서만 찾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말은 위로이자 응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매출은 안정되었고,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구조적 한계도 분명해졌습니다. 출판사가 늘어날수록 거래처는 몇 배로 증가했고, 소수 인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운영 구조가 되었거든요. 운영자가 바뀔 때마다 재고, 정산, 입고, 연락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세팅해야 했고, 그 과정은 반복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유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서점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구조는 유통 사업에 더 가까웠던 것이죠.
유통은 낭만이 아닙니다. 자동화 시스템이 없다면, 인건비를 고려한다면, 거의 고난도의 작업에 가깝죠.
책을 고르고 진열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하지만 그 뒤를 받치는 구조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입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합니다. ‘이 모델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이 질문은 지난 9년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낭만이 아니라 숫자와 통계, 시스템의 구조로 유통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때 비로소 ‘지속’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죠.
|
|
|
더레퍼런스의 다양한 활동들.
저는 여전히 예술을 좋아합니다. 다만 이제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압니다.
더레퍼런스는 앞으로 감각만으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라, 구조 위에서 작동하는 예술 교류 공간이자 콘텐츠 허브가 되려 합니다. 확장이 아니라 밀도로, 질주가 아니라 설계로.
CC NOW 뉴스레터 역시 같은 마음으로 이어가려 합니다. 10년을 앞두고, 우리는 다음 단계를 준비합니다.
2039년, 더레퍼런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쩌면 그 이름이 ‘레퍼런스 아시아’로 나아가길 기대해봅니다.
|
|
|
CC는 어떤 의미인가요?
‘참조하라’는 뜻의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약자입니다
아티스트처럼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공유하세요 |
|
|
더레퍼런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4길 44, 2F T. 070-4150-3105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