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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남긴다는 것은 나머지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 끝에 오래 함께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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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뉴스레터 SEPTEMBER 19, 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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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어떻게 하시나요? 자꾸 찾아보게 되고, 사진으로 남기게 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소유하지 않더라도 그 대상에 몰두하고, 어느 순간 강한 유대를 형성하게 되죠. 소유의 형태를 넘어서는 그 순간들 또한 컬렉팅의 시작이 아닐까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본격적으로 작품을 모으기 전부터 시작된 다양한 모습의 컬렉팅을 얘기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컬렉팅의 범위를 넓혀 보았습니다.
From 이성주 MDMPLUS 디자인개발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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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딸 세영이와 함께 복합문화예술공간 뮤지엄그라운드를 방문했어요. 다양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중 세영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키야킴 작가의 개인전 《지극히 사적인 응시의 출력》이었죠. 택배 포장지, 수세미, 비닐 같은 일상 재료로 바비인형의 옷과 액세서리를 만든 작품들이었습니다.
저는 작품보다 전시를 보는 세영이의 모습을 많이 담고 싶었어요. 아내 눈에는 다 비슷해 보이는 사진일지 모르지만, '딸 바보'인 제 눈에는 조금씩 다른 표정과 순간들이 보였습니다. 한참 전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바비인형 앞에서 세영이의 발걸음이 멈췄어요. 손가락으로 작품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거, 이거, 이거.” 그 많은 바비인형 중에서 세영이가 하나를 선택한 순간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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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키야킴 《지극히 사적인 응시의 출력》을 감상하는 세영, 2020. (우)키야킴 《Together, To Gather》에서 작가와 대화하는 세영, 2023.
집에 돌아오자마자 세영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어요. 한참을 나오지 않길래 살짝 들여다보니, 집에 있던 풍선과 색종이를 꺼내 바비인형에게 옷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전시장에서 본 작품을 그대로 따라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세영이의 작품에는 전시의 흔적이 명료하게 담겨 있었죠.
세영이는 전시장에서 직접 골랐던 바비인형을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작가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어요. 확실한 것은, 《지극히 사적인 응시의 출력》에서의 경험이 유의미한 영향을 가져왔다는 사실어었죠. 알록달록한 바비인형과 작은 손으로 옷을 입히는 세영이. 꼭 소유하지 않아도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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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영이 바비 인형에 만들어 준 옷.
강강훈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 경험도 나누고 싶어요.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일본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한쪽에 걸려 있던 연작 ‘Color Series’ 중 도베르만 핀셔 대형견 그림을 보았어요. 사진처럼 정밀하면서도 회화처럼 따뜻했습니다. 당시에는 강강훈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사이즈와 가격대였기에, 구매할 엄두도 내지 않고 구경만 했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작품 리스트의 PDF 자료를 받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고민도 하지 않고 1분 만에 〈BLUE DANUBE〉라는 작품의 구매 의사를 밝혔어요. 실물을 본 것도 아니지만, 첫인상만으로 내린 결정이었죠. 이후에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해당 작품을 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 더 고민했다면 내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죠. 운이 좋다는 생각에 마냥 기뻤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날의 선택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강강훈 작가의 작품을 전시에서 보고, 지나가며 다시 보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택에 걸린 시간은 1분이었지만, 그 선택에 도달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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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조현화랑에서 진행된 강강훈 작가의 개인전에서, 2023. (우)롯데백화점에서 주최한 《재현과 재연》에 디스플레이된 강강훈 작가의 작품과 세영, 2022.
강강훈 작가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수백, 때로는 수천 장의 딸 사진을 찍고, 그중 단 한 장을 고릅니다. 그 한 장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거죠. 나머지 사진들은 역할을 갖지 못하고 버려지는 게 아닐까, 처음에는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차츰 변화했어요. 7년의 일본 생활을 돌이켜 보면, 저는 유행을 따르는 옷보다 로컬 브랜드의 개성 있는 디자인과 소재, 만듦새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관점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옷을 고르는 기준이 되었죠. 기준에 부합하는 oyk 같은 브랜드도 알게 되고, 지금은 같은 디자인을 세 벌이나 살 정도로 교복처럼 입고 있어요. 많이 가지기보다 마음에 드는 하나를 선택하는 일, 좋은 하나를 고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경험하며 기준을 만드는 방식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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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소재 강강훈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2021 ⓒ강강훈
선택받지 못한 수천 장의 사진도, 꼭 버려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수천 장의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그중 한 장을 고를 수 있던 것처럼,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경험과 시선이 결국 선택한 하나의 바탕이 되었을 테니까요. 하나를 남긴다는 것은 나머지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 끝에 내가 오래 함께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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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컬렉션 중 하나. 인스타그램 피드라는 형태를 가졌다.
컬렉팅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순간보다 훨씬 먼저 시작됩니다. 무엇에 마음이 가는지 오래 들여다보고, 수많은 선택을 반복하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갑니다. 옷을 고르고, 공간을 바라보고, 작품 앞에 오래 머무는 일. 어쩌면 컬렉팅은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쌓인 수많은 선택이 어느 순간 실제 작품과 물건으로 나타났다면, 그 이전의 시간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보이지 않는 컬렉팅’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 컬렉팅을 천천히, 여러 형태로 이어 가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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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ference Note
- 소유하기 전부터 컬렉팅은 시작되고 있다는 이성주 디렉터의 이야기.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이미 무언가가 쌓이고 있습니다.
-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야 한 장을 고를 수 있다는 강강훈 작가의 작업 방식처럼,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결정이 결국 하나의 선택을 만든다는 것.
- 다음 호는 이성주 디렉터의 마지막 <스몰 컬렉터> 시리즈로, 개인적인 취향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의 경험으로 확장되는지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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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는 어떤 의미인가요?
‘참조하라’는 뜻의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약자입니다
아티스트처럼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공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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