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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작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제 그림을 설명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그 그림을 새롭게 보는 사람이 되었죠.”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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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뉴스레터 OCTOBER 10, 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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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마음에 드는 그림을 집에 들이는 일이 좋았습니다. 하나둘 작품을 사며 몇 년을 보내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 어떤 일이 생길까?’
≪스몰 컬렉터≫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 작은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From 이성주 MDMPLUS 디자인개발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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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컬렉터 ⑤ 호주머니 속 취향, 함께 나누면 생기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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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남동의 라이프스타일 숍 모노하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안문수 작가의 《작은 나무 도막 속, 사람》 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남은 작은 토막으로 만든 사람 조각이 유독 마음에 남았죠. 쓰임을 다한 자투리 나무에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만들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죠. 2년 뒤인 2023년, 판교 스튜디오에서 안문수 작가님과 이현진 기획자님이 진행하는 우드 스팀 밴딩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두 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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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의 호주머니 컬렉션》 전시 포스터
그리고 2024년, 업무 의뢰로 다시 스튜디오를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현진님과 자연스럽게 저의 컬렉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림을 좋아하게 된 계기부터 용돈을 조금씩 모아 작은 작품을 사 모으는 이야기까지요. 그러자 현진님이 뜻밖의 제안을 건넸습니다.
“그 컬렉션을 전시해 보면 어때요?”
잠시 생각하다 저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한번 해볼까요?
그렇게 저의 컬렉션이 전시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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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하의 첫 전시 《작은 나무 도막 속, 사람》
전시의 제목 ‘이성주의 호주머니 컬렉션’도 그 자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큼 거창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조금씩 모아온 작은 컬렉션이라는 뜻이었죠. 2024년과 2025년, 수장고 갤러리 깊은에서 두 번의 전시를 열었어요. 전시 준비를 위해 주말마다 보부상처럼 그림을 차에 가득 싣고 전시장으로 갔습니다. 현진 님과 그림들을 하나씩 꺼내 벽에 걸고 서로의 자리를 정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공간에 그림들을 하나씩 펼쳐놓고 보니, 집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각각의 그림으로만 보이던 작품들이 한 공간에 모이니, 서로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는 한 번에 모든 그림을 꺼내놓고 볼 일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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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도 전시의 기획자 현진 님과의 만남
전시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그림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해서 오래 바라보았던 작품 앞에 다른 누군가가 멈춰 서 있는 모습이 새로웠죠. 어떤 분은 작품의 색과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했고, 또 어떤 분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지인 한 분은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해 주셨습니다.
“그림을 보는데 성주 씨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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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에 위치한 수장고 갤러리 깊은
그저 좋아하는 작품들을 하나씩 모았을 뿐인데, 그 안에는 어느새 저의 취향과 생각,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었나 봅니다. 혼자 좋아해서 집에 들여놓았던 그림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이야기를 만난 거죠. 제가 좋아했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또 다른 의미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또 하나 바랐던 것이 있습니다. 분당에 살면서 늘 아쉬웠던 것은 가까운 곳에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많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딸 세영이와 판교와 분당 근처의 갤러리를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주말이면 특별한 계획 없이 집을 나와 산책하듯 갤러리에 들렀어요. 그림을 보고, 갤러리스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죠. 그림 한 점을 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주말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도 판교에 사는 분들이 산책하듯 편하게 들러 그림을 만나는 자리가 되었으면 했거든요. 막상 전시를 열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가까이 사는 분들과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은 물론, 제가 소장한 작품의 작가님들도 직접 전시장을 찾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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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의 호주머니 컬렉션》의 전경
그중 한 분이 남겨 주신 글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지만, 언젠가 가족이 생긴다면 이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딸아이와 함께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집에 들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죠.
매일 내일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살다가 오랜만에 조금 먼 미래를 그려 보게 되었다는 말도 있었는데요. 그 글을 읽으며 저도 잠시 멈춰 생각했습니다. 세영이와 처음 갤러리에 갔던 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떠올랐죠. 처음에는 그저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제가 모아 온 그림을 보여주는 자리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고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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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의 경험으로 완성된 전시 @shimsang_
두 번의 전시를 하면서 작은 토크도 몇 차례 진행했습니다. 김영주 작가님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우스갤러리2303 강언덕 대표님과는 컬렉팅과 갤러리,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거치며 제 취향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먼저 ‘살까, 말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을 누구와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두는 기쁨도 크지만, 그 작품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나눈 이야기는 훨씬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게 컬렉팅은 단순히 작품을 소유하는 일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곁에 두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의 시간과 기억까지 함께 모으는 일에 가까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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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갤러리2303의 강언덕 대표와의 토크
전시를 보신 분들이 하나같이 물어보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그림들을 집에 다 걸어놓고 생활하세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갤러리하우스에는 제가 가진 작품이 모두 걸려 있지 않습니다. 대략 30% 정도만 벽에 걸려 있고, 나머지는 수납장 안에서 쉬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거나 대청소를 할 때, 혹은 그냥 제 기분이 바뀌었을 때 수납장 안에 있던 그림 하나가 새로운 벽을 찾습니다.
반대로 한동안 걸려 있던 그림은 수납장에 들어가기도 해요. 그림도 잠시 동면을 하는 셈이죠. 그러나 수납장 안으로 들어가는 그림들을 보면 언제나 아쉬움이 듭니다. 분명 좋아서 구입한 그림인데, 내가 보지 않는 시간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요즘에는 재미있는 생각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빌려주는 것예요. 제가 설계한 공간에 일정 기간 걸어둘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가구나 소품과 바꿔 사용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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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품, 도서 등 컬렉션을 보관하는 수납장
최근에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박국이를 운영하시는 분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그분의 공간에 제가 가진 ‘잠자고 있는 그림’을 보내보는 것도 고려하고 있죠. 내 집에서는 늘 보던 그림이 다른 사람의 공간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거든요. 반대로 제가 평소에는 선택하지 않았을 물건을 제 공간에 놓아보면 어떨지도 궁금하고요. 소유하고 있는 취향을 서로 빌려주면서, 서로의 취향을 경험해보는 것. 요즘 제가 생각하는 컬렉팅은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박국이 님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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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kkookii House 리노베이션 과정
호주머니 속에는 아직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성주의 호주머니 컬렉션’은 그림을 모으는 일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그림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한 작품을 만나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의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 뒤 다시 일을 의뢰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나눈 작은 대화가 전시로 이어졌죠. 전시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작품을 함께 바라보며 나눈 이야기들은 다시 이 여섯 편의 뉴스레터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취향도 그렇게 순환하는 것 같습니다. 혼자 좋아하던 것이 누군가와 나누는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또 다른 사람과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저는 앞으로도 작은 것들을 계속 모으려고 합니다. 그림일 수도, 책일 수도, 일상 속 재미있는 장면일 수도 있겠네요.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혼자 간직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스몰 컬렉터’란 많은 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취향의 세계를 넓혀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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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PH129 더펜트하우스에서 발견한 초예술 토머슨 (우) 눈이 내린 날, 차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흔적
처음에는 무엇을 모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을 모았는지보다, 그것을 통해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가 더 오래 남습니다. 이제 ≪스몰 컬렉터≫ 이야기는 마무리되지만,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작은 것들이 아직 더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혼자 간직하기보다 누군가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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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으로 이사한 박국이샵의 풍경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호주머니에도 오래 간직해 온 작은 것이 하나쯤 있기를 바랍니다. 그림이든, 책이든, 오래된 물건이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취향이든. 언젠가 그것을 누군가에게 꺼내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스몰 컬렉터≫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호주머니 속 작은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겠죠.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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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ference Note
- 좋아서 곁에 두었던 그림은 누군가 그 앞에 멈춰 서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를 갖게 됩니다. 이성주 디렉터의 컬렉션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함께 바라보는 경험’으로 확장되었어요.
- 그림을 빌려주고, 가구와 소품을 서로 바꿔 써보는 일. 소유의 경계를 조금 느슨하게 할수록 취향은 더 멀리,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이성주 디렉터의 이야기를 통해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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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는 어떤 의미인가요?
‘참조하라’는 뜻의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약자입니다
아티스트처럼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공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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