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모든 것을 참조하세요. CC NOW CC ME! "책을 들고 서점에서 뛰쳐 나와라."
- 데이비드 호르비츠 『책을 훔치는 완벽한 방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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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뉴스레터 FEBRUARY 21,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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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은 평소 생각이 막힐 때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서가를 한 바퀴 둘러봅니다. 서점으로 출근하는 직원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셈이죠. 책을 집어들고 요리조리 훑다 보면 머릿속이 바빠집니다. 책의 크기부터 종이와 서체, 제본과 후가공 방식을 살피며 책의 주제를 풀어낸 과정을 짐작해 보는 거죠. 마치 퍼즐을 맞춰 나가듯이요. 한참만에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면 어느새 손님들 틈에 섞여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 물론 저는 일하는 거예요) 이렇게 책을 만든 다른 이들의 생각을 엿보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서점에서 어떤 영감을 얻을까 하고요. 마침 지금도 누군가 서가에 서성이고 있네요. 슬쩍 다가가 물어보겠습니다.
서점에서 일하는 당신, 손에 집어든 그 책 한번 보여 줄래요?
from 디자이너 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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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루팡의 달콤한 유혹
혜빈📙 | 아까 주머니에 넣은 그 책, 제목이 흥미로운데요. 오늘 복장도 수상하고요. 서점 직원으로서 그 책을 고른 이유가 듣고 싶어요.
지현📓 | 서점에서 월급 루팡하는 최고의 방법은 책을 훔치는 거죠. 책을 몰래 들고 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꿀팁이 여기 있거든요. ‘서점 창문에 구멍을 내고 책을 구멍으로 던져라’, ‘서점에서 친구에게 행진을 부탁하여 모두가 행진을 지켜볼 때 책을 훔쳐라’처럼 『책을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는 책을 훔치는 80여 가지 기발한 방법들이 담겨 있어요. 요즘은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서점을 많이 이용하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상 책을 ‘훔친다’라는 개념 자체가 더 이상 성립되기 어렵죠. 그런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 책이에요. 도둑질의 방법은 탄생과 동시에 이미 구시대의 매뉴얼이 되어버리는 거죠. 이 책도 이렇게 훔쳐라, 훔쳐라 하는데 결국에 이 훔치는 꿀팁을 돈 주고 사잖아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책을 훔치는 방법을 다룬 책이 서점 매대에 당당히 진열되어 있다는 점도 참 재밌어요.
유정📕 | 이 책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슬아 님도 이 책 언급한 적 있었죠?
슬아📘 |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가 주최한 2011년 뉴욕 아트북페어에서 나눈 대담에서 시작된 책이에요. 우리나라는 출판사 엔커(ENKR)에서 발행했고요. 저는 저작권 개념이 개입되기 전 상태에서 지식을 공유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런 맥락에 있어요. 서점에서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책을 두고 나온다든지, 책에 소개된 행위들은 결국 내가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저작권을 벗어나려고 하는 행위로서 가능한 얘기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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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 | 판형부터가 책을 훔치기 되게 좋을 것 같은데요(웃음). 작가가 혹시 가난했을까요?
유정📕 | 『Change the name of the days』와 같은 저자인데요, 데이비드 호르비츠(David Horvitz). 이 책은 표지만 봐도 부자예요(웃음).
지현📓 | 이 책은 32가지 짧은 단어로 구성되었고,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장편 시가 수록되어 있어요. 단어를 지면에 배치시켜 운율이 느껴지게 하는 일종의 형식 실험인 것 같네요. 다섯 살 난 딸의 도움을 받아서 제작되었대요.
혜빈📙 | 어린이의 시각이 결합돼서 그런지 색다른 것 같아요. 두 책 모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세인📗 |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라는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것 같아요.
슬아📘 | 맞아요. 사실 지식의 공유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법 공유로 인해 저작권 문제가 제기되기는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식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고 봐요.
지현📓 |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서점에서 책을 사가는 손님들이 왠지 기특하면서도 수상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심심할 땐 ‘나는 서점 직원인 척하고 있는 책 도둑이다’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고요. 생각해 보니 일하러 와서 이런 잡생각을 하는 것도 일종의 작은 월급 루팡인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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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가장 핫했던 피클?
유정📕 | 2024년 더레퍼런스 서소문점 베스트셀러 중에서 골랐어요. 서점이 미술관에 위치한 만큼 전시와 연계된 도서를 주로 큐레이션하지만, 동시에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의 아티스트북도 많이 취급하고 있어요. 특히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없는 독립 출판물을 많이 입고했는데, 그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책이 3D 툴을 이용해 그래픽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시시킴의 책, 『Pickle Book』이에요. 사람 가득한 해변을 배경으로 귀여운 피클맨이 춤추면서 다니는 짧은 이야기가 담긴 플립북인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항상 인기가 많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예요. 귀엽고, 힙하고, 팝해서 눈에 잘 띄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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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남수르 작가의 『지각책 : 遲刻冊』, 『메롱책』 같은 키링 형태의 책도 인기가 많아요. 요즘 젠지(Gen-Z) 세대 친구들에게 더 어필을 하는 것 같고요. 작은 책들의 인기를 보면서 출판 시장도 그렇고, 책이라는 개념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구나를 느꼈어요. 서점을 방문하신 분들에게 이 책들이 환영받는 걸 보면서 우리가 독립 서점으로서 맞는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요.
혜빈📙 | 요즘엔 책을 정보 습득의 수단이 아니라, 재미를 주는 요소,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매체로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저는 KioskKiosk 매장에서 『Pickle Book』을 처음 봤는데, 서점이 아닌 곳에서 책이 소품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키링책 같은 경우도 초등학교 때 문방구에서 보던 미니 다이어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서 2030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고요. 약간 ‘킹 받는’ 포인트가 있어야 어필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유정📕 | 어떻게 보면 책도 소비재 중 하나여서, 기분을 좋게 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동시에 집에 두면 예쁘기도 한, 혹은 키링처럼 쓰임새가 더해지는 식으로 많이 변한 것 같아요.
혜빈📙 | 서소문점은 전시 도록 판매량도 많은데, 『Pickle Book』처럼 굉장히 다른 성격의 책들이 동시에 매출이 높은 점이 재미있네요.
유정📕 | 맞아요. 그런데 작은 책들은 구매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에요. 주로 어린이 손님들이 좋아하고, 도록 구매층은 30대 이상이에요.
세인📗 | 그런데 『Pickle Book』은 하필 피클이 주인공일까요?
슬아📘 |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책에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어요. 그냥 귀엽잖아요(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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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감각을 깨워라
혜빈📙 | 저는 서점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답게, 환기가 필요할 때마다 서점을 둘러보며 아이디어를 얻곤 해요. 최근 눈에 띈 책은 김도균(kdk) 작가의 『instagram@kdkkdk』인데요. 작가가 2011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인스타그램에 매일 업로드한 1,555장의 사진을 엮은 책으로, 일본 디자이너 타나카 요시히사(Tanaka Yoshihisa)가 디자인했어요. 재밌는 점은, 아날로그 이미지를 디지털화해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그 사진을 전시하고, 또 책으로 엮어낸 작업의 흐름이에요. 인스타그램이 초창기 아날로그 감성을 모방한 필터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져요. 디지털과 인쇄 매체를 자유롭게 탐구하는, 일종의 반항심마저 느껴지고요. 표지 용지가 폴라로이드 인화지랑 질감이 비슷한 점도 독특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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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20110326-20171214 instagram@kdkkdk20171215-20171231’ 전시 전경, 상업화랑, 2017 ⓒk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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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kdkkdk』 도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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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아📘 | 디자이너가 보기에 제작에서 가장 특이해 보이는 지점도 있었을까요?
혜빈📙 | 배면 인쇄(Fore edge printing)요. 텍스트가 배면과 책등까지 흐르게 배치돼 있어서, 제목을 읽으려면 시선이 계속 움직이게끔 의도한 게 재미있어요. 배면 인쇄는 대부분 성경책에 금장을 칠할 때 많이 쓰이는데, 제가 알기론 국내 업체가 2-3군데밖에 없고 감리를 보는 것도 굉장히 까다롭다고 해요. 작년 여름 『HIJACK GENI』를 작업할 때도 전화번호부 컨셉을 강조하기 위해 노란색 배면을 칠했는데, 색상 선택지도 꽤나 한정적이었어요.
유정📕 | 그렇구나, 책등에 인쇄해서 시리즈가 합쳐졌을 때 하나의 그림이 된다든가, 그런 건 만화책에서 많이 봤는데 이렇게 배면에 인쇄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세인📗 | 왜 그런 방법을 택했을까요?
혜빈📙 | 제 생각엔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미지들은 평면적이고 파편적인데, 책으로 엮었다는 건 어쨌든 물성을 부여하는 거니까, 두께감이 확실하게 인지될 때 ‘책’이라는 매체가 더 강조되는 것 같아요. 책으로 나오기 전, 2017년 상업화랑에서 전시를 열었을 때 진열된 사진을 구매하면 계정에서는 영구 삭제해서 구매자가 완전히 소장할 수 있게 했더라고요. 무한히 증식되는 디지털 이미지와 다르게 이 책은 500부 한정 에디션이고, 작가의 친필 사인이 담겨 있어 고유성이 더 강조되고요. 디지털 매체가 가진 특징을 전부 거꾸로 작업해놓은 느낌이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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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직원의 은밀한 취미 탐구하기, 어떠셨나요? 역시 책은 혼자 읽을 때보다 같이 나눌 때 세계가 더욱 확장되는 것 같아요. 어느새 마칠 시간이지만, 아직 책을 덮긴 일러요. MD 슬아와 큐레이터 세인이 발견한 책이 남았거든요. 다음 CC NOW에 이어서 마저 소개할게요. 어떤 책이 등장할지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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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레퍼런스 직원들을 소개합니다!
혜빈📙(디자이너)ㅣ책을 통해 세상을 살펴보는 겉촉속바형 디자이너
유정📕(MD)ㅣ호시탐탐 새로운 일을 모색하는 야무진 아티스트 MD
지현📓(파트타이머)ㅣ디자인적 사고를 꿈꾸며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형 알바생
슬아📘(MD)ㅣ보고 듣는 모든 것이 리서치. 다재다능 아티스트 MD
세인📗(큐레이터)ㅣ무엇이든 뾰족하게 파고드는 사냥꾼형 기획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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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훔치는 완벽한 방법』
데이비드 호르비츠 David Horvitz
엔커 ENKR, 2020
₩ 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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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le Book』
시시킴
시시킴, 2023
₩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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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kdkkdk』
김도균 KDK
이안북스 IANNBOOKS, 2019
₩ 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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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는 어떤 의미인가요?
‘참조하라’는 뜻의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약자입니다
아티스트처럼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공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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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4길 44, 2F T. 070-4150-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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