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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여전히 마이너리티다."
- 조숙현, 10년간 미술 현장을 바라본 비평가이자 기획자, 출판사 아트북프레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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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때때로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지난 5월 24일, 더레퍼런스에서는 『가까운 미술』 출간을 기념한 북토크가 열렸어요. 현대미술 현장형 에디터 출신 조숙현 작가와, 패션과 예술을 넘나들며 한국 미술을 깊이 있게 조명해 온 안동선 에디터—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시고, 지금껏 조명되지 않았던 한국 현대미술의 이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조숙현 작가는 지난 10년간 화려한 외면 너머, 예술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작게만 느껴지는 국내 미술 시장, 그 안의 적나라한 현실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 묵직한 질문을 던져요. “지금 한국 미술의 좌표는 어디쯤일까?”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 ‘아트북프레스’를 통해 펴낸 책 『가까운 미술』에서 그는 날카롭지만 유쾌하고, 애정 어린 분노가 스며든 미술 현장 이야기를 펼칩니다.
이번 북토크에는 또 다른 증인, 안동선 에디터도 함께했습니다. 패션지에서 에디터로 활동한 그는 예술과 패션, 문화의 경계에서 관찰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각자 다른 현장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두 사람의 교차하는 시선을 따라서, 동시대 한국 미술의 현장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시야에서 멀어진 ‘가까운 미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from 에디터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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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선 | 『가까운 미술』은 10년간 비평가이자 기획자로서, 지금은 출판사의 편집자 겸 작가로 미술계를 지켜보면서 느낀 분노와 애정을 모두 담은 파워풀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조숙현 | 『퍼블릭아트』 기자로 일하면서 미술계에 로그인했어요. 별세계 같은 곳에서 10년을 일하다 보니 정말 많은 걸 보고 경험했고, 그만큼 제 안의 용량도 꽉 채워져 갔어요. 이걸 정리해야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죠.
‘가까운 미술’은, 국내 미술을 일컬어요. 지금의 것, 동시대 미술과 국내 작가들을 다루고요. 보통 생각하는 미술은 인상파처럼 지난 시대의 미술이거나 톱 클래스의 화려한 작품이고, 국내 현장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소외된 현상에 대해 울림이 있어서, 국내 현대미술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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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안동선 | 2년 전, 『내 곁에 미술』이라는 책을 출간했어요. 미술 책은 도판이 들어가야 하고, 활자만으로 구성된 소설과는 달리 4도 인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그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미술 관련 서적, 특히 현대미술 책은 여전히 비주류로 여겨져 판매하기가 어렵다고들 하죠. 『가까운 미술』의 서문에도 강한 어조로 “현대미술은 여전히 마이너리티다”라고 적으셨어요. 왜 이런 표현을 쓰셨나요?
조숙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표한 2023년 통계에 따르면 10만 명 중 87명, 그러니까 0.087퍼센트가 창작 활동을 한다고 나와요. 한국인의 여가 문화 향유 실태에서는, 미술 전시를 1년에 한 번 보는 인구가 5.6퍼센트라고 합니다. 하키 같은 스포츠 비인기 종목과 비슷하죠.
안동선 | 서문의 문장을 옮겨 볼게요.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후반, 두 번의 이례적인 미술 시장 호황이 있었다. 단색화 열풍이 불었고 국내 출신 갤러리 매출액이 증대되고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국내 작가들이 생겨났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 차원에서 문화재단이 설립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국공립기관의 종사자들은 비정규직이 늘었다. 물리적인 인프라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는데 그것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전문가에 대한 처우는 제자리이다. 뉴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유튜브 채널이 신생되었지만 큰 관점에서 보자면 현대미술은 아직 마이너리티의 영역에 남겨져 있다.” 현대미술이 마이너리티로 남게 된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조숙현 | 현장에 있으면서 작가도 만나고, 화려한 전시도 보고, 해외도 다니면서 10년 정도 지나니까 국내 시장에 독특한 면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한국은 중앙 집권의 정책 국가이다 보니, 미술을 이야기할 때 정책 이야기가 빠질 수 없거든요. 조금 딱딱할 수 있는데, 중요한 이야기라 설명할게요. 정책이라는 게 세워진 때가 1950년대 1공화국 세대예요. 기본적인 시설의 국립박물관과 미술관, 국립극장이 전쟁 직후에 설립되고, 2공화국을 지나 3, 4공화국의 유신 헌법 체제에서 문화예술진흥법이 생겼어요. 그리고 5공화국에서는 ‘지역문화’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과 예술의 전당이 생기고, 3S 정책이 시행됐어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6공화국에 생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어요. 1990년대 문민정부 들어서는 ‘문화산업’을 이야기합니다. 문화를 산업으로 수출해서 나라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 기조에 깔려 있었다고 봐요.
2000년 들어 고무적인 성과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화예산 1% 달성’이에요. 국가 예산에서 1%를 문화에 할애하자는 정책, 실제로 이것을 실천합니다. IMF 직후였는데도요. 2000년대 참여정부는 ‘문화민주주의’를 강조해요. 아쉬운 점은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하지만 그렇다 할 책임은 없었다는 거예요. 2013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건립되는데, 관계 인력에서 비정규직이 많이 양산됐어요. 주요 인사들도 계약직이었고, 그것이 아직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 후반에는 블랙리스트 청산이라는 이슈가 있었어요. 이처럼 한국에서는 정책 안에서 모든 게 이뤄지는데, 예술도 예외는 아니었죠. SNS와 매스컴에서는 미술 시장의 예쁜 면만을 좇는데, 그 사각지대에 있는 가까운 미술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저 또한 업계 종사자로서 그런 점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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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부터 7월까지 열린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 기념 최민 컬렉션 기획전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 ©안동선
안동선 | 지역 시립미술관이나 문화재단이 많이 생기기도 했지만, 어떤 기관은 유명무실해지기도 했어요. 이러한 인프라가 생겨 나면서 지역 생태 미술이나 예술가들에게 실제로 도움되었을까요?
조숙현 | 인프라라는 건 기본적인 것이니까 있으면 좋아요.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 현대미술 분야에서 최고 기관인데, 십 몇 년 전만 해도 과천에 있었어요. 서울에는 없는 기관이었죠. 좋은 전시와 행사를 열고, 문화를 향유하고, 관광도 하고, 다 좋은데 정책에서 가장 쉽게 건드리는 것이 인프라이기도 해요. 우후죽순 생기다 보니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은, 아직까지 많은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요. 작가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가까운 미술이라는 건, ‘좋은 창작자와 그걸 알아보고 향유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예요. 인프라 정책의 기조는 그 지점에 있어야 해요. 작은 마을에도 그런 요구를 충족해 주어야 하죠. 2018년 강원도 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았을 때, 태백 현직 광부인 사진작가를 만난 적 있어요. 사진은 빛이 중요한데, 빛이라곤 손전등이 전부인 탄광에서 생동감 넘치는 광부의 삶을 촬영한 사진을 보며 좋은 창작을 하는 사람, 좋은 예술을 향유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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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현 저자가 만난 광부 사진작가 전제훈의 <마지막 광부들> ©전제훈
안동선 | 미술 시장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저는 2010년대 후반에 미술계가 수플레처럼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고, 작가님은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후반에 미술 시장의 붐을 경험하셨죠. 매년 가을이면 프리즈(Frieze) 위크가 찾아옵니다. 이 행사는 2022년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키아프(Kiaf)와 공동으로 개최되며,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프리즈는 런던의 동명 잡지사에서 시작된 아트 페어로, 현재 세계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로 거론됩니다. 패션 브랜드가 현대미술을 중요하게 다루고 소비하는 경향도 프리즈를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와 같은 미술 시장과 프리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숙현 | 전업 작가인데도 자기 작품을 매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프리즈가 열린 이후로 미술 시장의 규모가 1조 원으로 늘었다고 해요. 그와중에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소외받는다, 콜렉터의 정체가 무엇인가, 설렙과 연예인만 남는다’, 비분강개하는 말들이죠. 너무 작은 시장에서 이뤄지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시장은 공정해요. 시장에서 팔린다는 건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준다는 뜻이거든요. 지금까진 시장이 워낙 작아서 독과점이 있었어요. 그러니 시장이 많이 커져야 해요. 캐주얼해지고, 매매가 많아져야 하고요.
안동선 | 프리즈 첫 회에는 부정적인 기사도 많았지만, 미술 시장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규모가 확대되고 작품이 꾸준히 팔려야 해요. 프리즈를 계기로 더 많은 메가 갤러리들이 들어와, 선진적 시스템으로 작가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작가들이 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분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해요. 아트 콜렉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제가 몇 작품을 소장해 보니, 때때로 콜렉팅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복잡하고 미묘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작품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결단으로 자산을 투자하는 것은, 작품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봐요.
조숙현 | 콜렉터의 존재는 다양해져야 하고, 무조건 많아져야 해요. 미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든, 투자 대상으로 삼든 더 많은 사람, 특히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콜렉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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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프리즈 서울(왼쪽), 2024년 프리즈 위크에 타데우스 로팍에서 열린 션 스컬리 & 게오르그 바젤리츠 개인전(오른쪽) ©안동선
안동선 | 그럼, 매체와 미술 비평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요즘 미술 매체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어요. 전통적인 미술 잡지인 『퍼블릭 아트』, 『아트인컬처』, 『월간 미술』 등이 있고, 동시에 패션 매거진에서는 아트 에디션이나 부록으로 『아트나우』, 『바자 아트』 같은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이나 SNS에서도 개인 또는 미디어 그룹에서 개성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채널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 시점에서, 미술 비평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조숙현 | 언론이 양분화돼 있어요. 정책에는 관심을 두지만, 작가가 발표하는 작품의 독특한 에너지나 개성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어 보일 때가 있어요. 패션지 같은 경우에는 전문지와 성격이 많이 달라요. 미술계를 화려하게 보이게 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어요. 그런 것도 필요해요. 기존의 미술 비평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소통하기 어려웠어요. 그런 가운데 새로운 비평가들이 등장하는데, 우선 안동선 에디터님이 계시죠. 그리고 박보나 평론가. 이 분의 글에는 애정이 있어요. 무언가를 똑바로 보게 하는 그 애정의 힘이 큰 평론가입니다. 그리고 윤원화 비평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안동선 | 『가까운 미술』의 에필로그 ‘예술가로 살아남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제리 살츠(Jerry Saltz)의 『예술가가 되는 법』이 떠올랐어요. 제리 살츠는 원래 미술가를 꿈꿨지만,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트럭 운전사부터 여러 분야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지금은 뉴욕 타임스의 미술 담당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널리스트입니다. 그가 쓴 『예술가가 되는 법』은 예술가와 지망생 모두에게 짧지만 핵심적인 조언을 담은 책으로 유명하죠. 작가님의 에필로그 역시, 여러 부캐를 병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미술계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담아 건네는 조언처럼 느껴져서,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조숙현 | 예술가가 된다는 건 1인 사업가가 되는 것이에요. 이것저것 다 해야 하죠. 현실에는 상업성과 예술성, 두 가지 유형이 있어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다 잡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잡을 수 있어요. 다만 그 지점에 이르는 사람은 굉장히 소수예요. 수많은 미술대학에서 졸업생을 배출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중 많은 사람이 이탈해요. 그 시간동안 견디고 견뎌서 작은 점 하나의 북극성을 향해 가요. 본인이 어느 유형인지를 파악해야 해요. 그럼 더 쉬워질 거예요. 자기 유형을 파악하고 나면, (우리 삶이 그 좌표대로 흐르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 전략을 짜서 나아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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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가 끝나고 난 뒤의 뜨거운 반응. 조숙현 작가(왼쪽)와 안동선 에디터(오른쪽). ©더레퍼런스
안동선 |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한 《쏘-리얼, 써리얼》의 전시 공간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는데요. 참여 작가들이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의견으로 부딪치기도 하는, 그런 열린 장에서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소중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있어 미술이란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며 『가까운 미술』 북토크를 마치겠습니다.
조숙현 | 미술 현장의 작가나 향유자나 종사자들이 한국 사회의 표준이나 일반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기회 비용을 많이 지출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미술을 선택하는 이유는, 내가 표준이 되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에 쌓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향유의 기회는 항상 있으니, 가까운 미술이라 생각하고 현대미술을 더 사랑해 주시고, 국내 작가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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