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모든 것을 참조하세요. CC NOW CC ME! “스몰 컬렉터에게 좋아함이란 완전히 설명될 수 없음이 남아 있는 감정입니다.”
-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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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뉴스레터 MARCH 28, 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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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상에서 “이거 좋아요”라는 말을 비교적 자주 하는 편입니다. 누가 묻지 않아도 먼저 말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마음이 움직인 순간에는 오히려 말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확신이 없어서라기보다, 그 감정을 쉽게 소비하고 싶지 않아서요.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 좋아함이 가볍게 정의될 것 같거든요.
보통 한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은 2~3초 정도라고 해요. 그 시간을 넘기지 못하면 그저 ‘보는 것’에서 끝나는 셈이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눈에 띄지는 않았는데, 결국 다시 돌아가서 보게 되고, 낯설지만 설명을 읽으며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작품들이 있어요. 그렇게 한번 더 보고, 또 떠올려 보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곤 합니다. 이게 잠깐의 호기심인지, 아니면 내 삶 안으로 조용히 들어오는 감정인지 알고 싶어서요. 가만 보면 처음 짧게 지나쳤던 건 그림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나의 경험과 시선 안에 들어오지 않은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취향이라는 건, 그렇게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만나는 세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기 전의 그 머뭇거림과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좋아함’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from 이성주 MDMPLUS 디자인개발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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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꽤 오랜 기간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공간은 책처럼 읽고 이해하는 영역이 아니에요. 오감을 통해 직관적으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느끼는 것이죠. 일본에서 처음 실무를 했던 이타미 준 건축연구소와 쿠마켄고 건축도시설계사무소에서의 경험이 이러한 제 감각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 두 곳 모두 돌, 나무, 흙과 같은 재료의 물성을 중요하게 다루었거든요. 공간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 자체로 느껴지게 만드는 방식이 인상 깊었고요. 저 역시 자연스럽게 절제된 색과 재료, 단정한 형태에서 오는 안정감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 시선이 쌓이면서 지금의 취향이 되었고, 여전히 제 감각의 기준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취향은 그림을 볼 때도 비슷하게 이어집니다. 특히 점, 선, 면, 색처럼 기본적인 요소로 구성된 한국의 단색화 작업에 시선이 머물 때가 많아요. 아마 건축적인 언어와 닮아 있어서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쌓아 온 좋아함의 기준은 또 다른 경험을 통해 관계의 이야기로 확장되었습니다.
서울 평창동에 있는 어느 갤러리를 방문한 날이었어요. 작가에 대한 정보도, 작품에 대한 배경도 거의 없는 상태였어요. 게다가 전시된 그림들이 제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갤러리스트가 조용히 다가와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작가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과정 속에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들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림은 그대로였지만 저와 그림 사이의 관계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그림의 ‘앞면’만 보던 제가 처음으로 그 ‘이면’을 상상하게 된 순간이었어요. 그날 갤러리스트는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를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충분히 컬렉팅을 해볼 수 있다”라는 말과 함께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나는 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아직 관계를 맺지 않았던 거구나. 그날 이후로 저는 ‘좋아하는가’보다 ‘이것과 관계 맺을 수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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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나의 취향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유명한 작가, 화제가 된 전시, 누군가의 추천은 분명 좋은 길잡이가 돼요. 하지만 그게 곧 나의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가치는 누가 정하는 걸까요?
이 질문을 떠올릴 때면 저는 우화를 하나 생각해요. 남태평양의 작은 섬마을 이야기인데요. 그곳에서는 신부의 가치를 신랑이 내는 소의 마릿수로 가늠했다고 해요. 그 마을에 ‘하나’라는 여성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별 볼 일 없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 외지에서 온 한 남자가 그녀에게 청혼을 합니다. 그것도 무려 여덟 마리의 소를 내겠다고 하면서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숫자에 모두가 놀랐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나타난 하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누구보다 당당하고 밝고 눈빛까지 달라진 모습으로요.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남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누군가의 선택과 태도가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에요. 가치는 원래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가 찾고 있는 취향과 기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생겨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선언을 좇는 대신, 내가 끝까지 바라보기로 결정한 선택 속에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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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한승무, 윤라희, 키요 <이성주의 호주머니 컬렉션>, 2025., (우)김리아 갤러리에서 열린 곽경화 작가 전시, 2020.
강릉으로 가족 여행을 갔던 날이었어요. 해변을 걷던 딸이 조개와 돌을 하나하나 고르고 있었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조개들 사이에서 필요한 만큼을 고르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어요.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을 위한 선물이라고 하더군요. 모아 놓은 조개를 보여 왜 이걸 골랐는지 묻자, 각각의 이유가 있었어요. 어떤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이유라고도 하면서요. 그 순간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컬렉팅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고. 스몰 컬렉터에게 좋아함이란 완전히 설명될 수 없음이 남아 있는 감정입니다. 말로 다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히 마음이 반응하는 지점. 그 지점을 오래 두고 바라보는 일. 그것이 관계가 되고, 그 관계가 곧 취향이 되는 것이겠지요.
이 뉴스레터를 읽으며 여러분에게도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기를 바랍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계속해서 마음에 맴돌았던 무언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유독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선택 하나. 그것이 이미 당신의 첫 번째 컬렉션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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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영,무제, oil on canvas, 24.2×24.2cm, 2024
〈고지영〉 집과 양, 그리고 내가 빠져나오지 못한 작은 버뮤다 고지영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늘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림뿐만 아니라 SNS에 올리는 사진과 스토리, 그리고 짧은 문장들까지,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감각이 좋달까요. 처음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집’을 주제로 한 그림이었어요. 건축과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지만, 사실 더 크게 와닿은 건 그림의 태도였어요. 군더더기 없이, 정면으로 승부하는 느낌. 어떤 장식도 기대지 않고 형태와 색감만으로 완성된 화면. 필요한 것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그 단순함이 오히려 더 강하게 남았지요.
아트 페어에서 작가님의 작품은 보통 하루만 지나도 대부분 판매됩니다. 그런데 제가 갔던 날에는 작은 양 한 마리가 남아 있었어요. 마치 갈 곳을 찾지 못한 듯, 조용히 혼자 남겨진 그림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유난히 예뻤는데, 아직 선택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니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어요. 아마도 딸이 양띠라서, 더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렀던 것 같기도 하네요. 결국 그 작품을 집으로 들였습니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 번 빠지면 쉽게 나오기 어려운 감정의 구역이 느껴졌어요. 마치 작가님이 만든 작은 ‘버뮤다 삼각지대’에 들어온 것처럼요. 그렇게 그저 계속 바라보게 되는 그림.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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