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모든 것을 참조하세요. CC NOW CC ME! “취향은 장식이 아니라,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을 설명하는 언어입니다.”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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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건 어디에 두면 좋을까.’ 그 질문은 단순히 물건의 자리를 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오래 바라보고 싶은지, 무엇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를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작품 한 점에서 시작된 작은 선택들이 어떻게 집의 모습과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 갔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좋아하는 것들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취향이 조금씩 공간에 스며드는 과정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From 이성주 MDMPLUS 디자인개발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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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저는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살림살이는 비교적 가벼웠거든요. 집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였어요. 아침에 창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일상을 다채롭게 채웠죠. 저에게 집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잠시 담아 두는 그릇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정착한 곳은 분당의 작은 평형대 아파트였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우리는 결국 이 세상에서 잠시 공간을 빌려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삶에 밀착한 가구들 사이로 딸아이의 장난감과 책이 하나둘 늘어 갔습니다. 작은 공간이다 보니 그림을 걸 수 있는 벽도 많지 않았어요. 어떤 그림은 운 좋게 제 벽을 만나 집의 풍경이 되었고, 어떤 그림은 침대 밑 수납공간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주인공이 될 날을 기다렸죠. 하지만 침대 밑에 넣어 둔 그림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요. 계절이 바뀌거나 기분이 달라지는 날이면 다시 꺼내 벽에 걸었어요. 겨우 그림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집이 달라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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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과 복도 양 끝에 마련한 오브제와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 2022, ©김동규.
수원의 23년 된 구축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게 되었을 때, 저는 이 집을 ‘갤러리하우스’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갤러리처럼 흰 벽과 여백을 살리면서 계절과 기분에 따라 그림의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집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작품이 특별한 날에만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식탁을 지나고 소파에 앉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풍경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그 바람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솜+어소시에이츠 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맡아 그 상상을 공간으로 구현해 주었지만, 주거 공간으로서는 몇 가지 불편함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거실 벽면에 타일이나 다양한 마감재로 포인트를 주고, 청소와 벽면 보호를 위해 하단에 걸레받이(몰딩)를 두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갤러리처럼 벽과 바닥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모습을 원해 걸레받이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마감하고 싶었어요. 덕분에 그림이 더 돋보였지만, 청소할 때는 벽 하단의 페인트가 벗겨지지 않도록 조금 더 신경 써야 했죠.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집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니까요. 편리함만으로 채워진 집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집에서 살고 싶었거든요. 돌이켜보니 한국의 아파트는 효율과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여백은 줄어들고 공간은 빠르게 채워지죠. 그 안에서 취향은 종종 장식이나 옵션 정도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취향은 장식이 아니라,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을 설명하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두기로 했어요. 그림의 자리를 바꾸고, 오래 아끼던 물건을 꺼내어 일상 가까이에 두는 일. 그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집은 비로소 ‘내 집’이 되어 갑니다.
결국 집은 나를 닮아 갑니다. 어떤 것을 남겨 두고, 무엇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둘 것인지에 대한 선택들이 쌓여서요. 저에게 집은 좋아하는 것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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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현관에 마련한 오브제를 전시할 수 있는 공간. (우)주방 원형창에 마련한 오브제를 전시할 수 있는 작은 갤러리 공간.
그때 문득, 일본의 ‘도코노마(床の間)’라는 공간이 떠올랐습니다. 벽면 한쪽이 움푹 들어간 형태로 그림이나 꽃, 서예 작품 등을 걸어 두는 자리인데,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이를 두고 서양의 ‘벽난로’에 비유하면서 일본 주거 공간의 상징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도코노마는 얼핏 보면 낭비처럼 보입니다. 수납도 되지 않고,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도 않으니까요. 한국의 아파트였다면 아마 그 공간 대신 수납장이나 붙박이장으로 채워졌을 거예요. 하지만 도코노마에는 분명한 역할이 있습니다. 손님은 그 공간을 마주보지 않고, 그 공간을 배경으로 등을 지고 자리를 잡아요. 집주인의 미감을 보여주는 공간이면서 손님을 존중하고 환대하는 구조인 셈이죠.
저 역시 집 복도 양 끝에 그림을 위한 작은 여백을 만들었습니다. 넓지는 않지만, 제가 오래 바라보고 싶은 것들을 놓아 두는 자리예요. 누군가를 맞이할 때는 대화의 시작점이 되어 주고, 혼자 집 안을 오갈 때는 문득 걸음을 늦추게 하는 풍경이 되었죠. 작은 공간 안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색과 방향은 조금씩 선명해지고, 무엇을 곁에 둘지 한 번 더 고민하고 깐깐하게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넓어서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제 시선과 선택이 쌓여 가면서 저만의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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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무, MISTAKE 1, acrylic on canvas, 10×10×4cm, 2025.
가끔 주말이면 아내와 딸이 둘만의 외출을 합니다. 집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저는 갤러리하우스의 전시를 기획하곤 하죠. 누구의 작품을 꺼낼지, 어떤 그림을 어디에 걸어 둘지 고민하는 정도지만, 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한 번은 복도 끝 벽에 아주 작은 그림 하나를 걸어 두었습니다. 한승무 작가의 ‘MISTAKE’ 연작 중 하나였는데, 크기가 고작 가로세로 십 센티미터 남짓한 그림이었습니다. 제가 소장한 작품 가운데 가장 작은 그림이기도 합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벽에 찍힌 작은 빨간 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그림의 표정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에요.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두 사람은 평소처럼 집 안을 분주히 오가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작은 변화를 발견합니다. “어? 여기 원래 이런 그림 있었나?” 하고 걸음을 멈추는 순간을 저는 좋아합니다. 특별한 리모델링이나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그림의 위치를 바꾸고 작은 작품 하나를 들이는 일만으로도, 익숙한 일상은 새로운 풍경이 됩니다. 스몰 컬렉팅의 즐거움은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간에 아주 작은 변화를 더하고, 그 변화를 통해 다시 한번 일상을 낯설고도 생기 있게 바라보게 되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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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취향을 처음부터 선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작품을 고르고, 집 안에 자리를 만들어 보고, 그 위치를 다시 바꿔 보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알아 갔습니다. 어떤 선택은 곁에 오래 남았고, 어떤 선택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처음의 마음이 오래 이어지지 않기도 했지만, 그 경험마저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머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가는 동안, 취향은 설명해야 하는 개념이 아니라 몸에 익어 가는 감각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공간은 없습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마음이 머무는 것 하나를 고르고, 그것을 놓을 작은 여백을 만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취향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고르고 결정하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길러지는 것이니까요. 스몰 컬렉터란 결국 그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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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ference Note
- 좋아하는 것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작은 선택들이 쌓여, 공간은 비로소 ‘내 집’이 됩니다.
- 취향은 설명해야 하는 개념이 아니라 몸에 익어 가는 감각이라는 것, 이성주 디렉터의 공간 갤러리하우스로 엿볼 수 있었어요.
- 다음 호에서는 이성주 디렉터의 소유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컬렉션을 살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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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는 어떤 의미인가요?
‘참조하라’는 뜻의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약자입니다
아티스트처럼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공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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