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모든 것을 참조하세요. CC NOW CC ME! “살 수 있던 작품보다 외면해야 했던 작품이 더 많고, 가진 작품보다 보내야 했던 작품이 더 많습니다.”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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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갖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려 본 적 있으신가요? 손에 닿을 듯 가까웠지만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한 것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소유하지 못한 것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갖지 못한 작품, 타이밍이 맞지 않아 놓쳐버린 순간들. 하지만 그것들이 남긴 것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소유했는가보다, 소유하지 못한 것들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 스몰 콜렉터 이성주의 세 번째 이야기 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From 이성주 MDMPLUS 디자인개발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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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사계절을 그리는, 일명 설악산 화가라고 불리는 김종학 작가의 개인전 《김종학: 사람이 꽃이다》에 갔던 날이 떠오릅니다.
하얀 실로 짠 목장갑 위에 그려진 작은 그림 한 점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죠. 손가락 끝마디에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장갑이라는 평범한 사물이 하나의 풍경처럼 보였어요. ‘내 손만한 목장갑인데, 내 호주머니로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품고 가격을 물어봤지만 곧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몇 달 동안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금액이었거든요. 결국 작품은 품지 못했습니다. 대신 사진 한 장과 짧은 문장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그날 SNS에 올린 김종학 작가의 사진과 문장은 전시 감상을 넘어 오래도록 제 곁에 남았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보다 그 문장이 더 자주 떠올랐고,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제 방식에도 조금씩 스며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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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김종학 작가 개인전 《김종학: 사람이 꽃이다》 전시 전경. (우)목장갑 위에 그림이 그려진 모습.
제 컬렉팅은 언제나 넉넉하지 않은 용돈에서 시작됩니다. 작품 하나를 사기 위해 두세 달을 모으는 일이 자연스럽고,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것도 어느 한편으로는 작품을 사기 위해서이죠.
그렇게 어렵게 모은 돈으로 정말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작품만 데려오지요. 그래서인지 제가 지나쳐야 했던 작품이 손에 넣은 작품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아요. 소유하지 않았는데도 오래 마음속에 머무르고, 때로는 이미 가진 작품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되죠.
어쩌면 컬렉팅은 무엇을 갖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오래 기억하게 되는지를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유하지 못한 작품들이야말로 지금의 제 취향과 기준을 만드는 첫 번째 컬렉션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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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으려 하지 않은 얼굴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평생에 걸쳐 수만 점의 미술품을 수집했고, '이건희 컬렉션'은 오늘날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죠. 방탄소년단 RM 역시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으며 젊은 작가부터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거장들까지 폭넓게 수집하며 자신만의 분명한 취향을 바탕으로 컬렉션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한동안 저는 이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저 정도는 되어야 컬렉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며 스스로를 낮추곤 했어요. 제게 컬렉터란 상당한 경제력과 안목을 갖춘 사람을 뜻했고, 저는 그저 전시를 자주 보러 다니는 관람객에 가깝다고 여겼거든요.
시간이 흘러 저도 조금씩 작품을 소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걸리는 그림들도 점차 늘어났지만, 스스로를 '컬렉터'라고 소개하는 건 여전히 어색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랑에서 만난 분들은 저를 '컬렉터님' 혹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 호칭이 부담스러웠어요. '작품도 몇 점 없는데, 심지어 그중 대부분은 소품 같은 것 뿐인데···.'라며 스스로를 낮추곤 했죠. 때로는 내가 작품을 살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닌지, 마음의 짐도 점차 커졌습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여러 곳을 다니면서 깨달은 건, 갤러리는 결국 작품이 거래되는 공간이기에 '컬렉터'라는 호칭은 일종의 매너이자 상투적인 단어라는 거였어요. 갤러리 입장에서는 작품을 꾸준히 구매하는 컬렉터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왠지 컬렉터를 자본의 크기로만 정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제 나름의 컬렉터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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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1990년대 지어진 수원시 영통구 청명마을의 구축 아파트 모습. (우) 갤러리하우스로 공사 전, 예전 아파트의 실내 모습.
제가 살고 있는 갤러리하우스는 1990년대에 지어진 구축 아파트입니다. 당시에는 경제성과 시공 효율을 우선하다 보니, 천장고가 약 2.3미터로 계획되었죠. 요즘 신축 아파트가 2.4–2.5미터의 천장고를 확보하는 것과 비교하면, 공간은 훨씬 협소해 보입니다. 거실의 폭도 신축 아파트와 비교하면 넉넉한 편은 아니에요. 가구들을 모두 배치하면 그림을 걸 수 있는 벽은 몇 남지 않아요. 이러한 이유로 작품을 고를 때도 그림만이 아니라 벽과의 비례, 여백, 감상 거리까지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나름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그림은 최대 20호(약 72.7×60.6센티미터)를 넘지 않겠어!’
물론 20호보다 큰 작품도 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벽을 가득 채울 때보다 적당한 여백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생각했어요.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작품을 가장 작품답게 만드는 또 하나의 프레임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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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현오 작가의 스튜디오. (우)〈침묵〉 Acrylic on korean paper mounted of wood panel, 99.9x 72.8cm, 2024.
2025년 화랑미술제에서 현오 작가의 그림을 보고 스튜디오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파란 머리의 소녀가 등장하는 〈침묵〉이라는 작품이 유독 마음에 남았죠. 소녀의 머리 위에는 새 한 마리가 있었고, 또 다른 새가 입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현오 작가는 말실수가 많은 자신을 성찰하며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지는 그림이었어요. 그렇게 40호에 가까운 이 작품을 구입할지 말지 며칠이나 고민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다른 그림을 선택했습니다. 그해 클림프갤러리에서 열린 현오 작가의 개인전에 딸과 함께 다시 찾았는데, 제 아이 역시 〈침묵〉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고르더군요. 살고 있는 공간의 제약때문에 스스로 세운 기준을 끝내 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죠.
최근 다시 마음을 움직인 컬렉팅이 있었는데요. 바로 기획자이자 작가인 김종혁이 기획 중인 그룹 프로젝트 《Draw on Page》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전시나 프로젝트보다 재정적 부담을 크게 낮춘 방식으로 진 행되었죠. 저는 이 프로젝트를 볼 때마다 다이소를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일반적으로 그림은 캔버스 위에 그려지지만, 《Draw on Page》에서는 작가가 직접 고른 중고책을 캔버스 삼아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모든 페이지에 그림을 완성합니다. 작품으로 재탄생한 책은 전시 기간 동안 모든 페이지가 펼쳐지고, 아크릴, 파스텔, 펜, 연필 등 재료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작품의 가격이 중고책의 가격으로 책정된다는 것입니다. 다이소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집어 들게 되는 것처럼, 《Draw on Page》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새 제 호주머니가 무참히 털려 있었죠.
최근 열린 열두 번째 프로젝트에서 저는 동화 작가 겸 화가인 루나 양의 작품 세 점을 데려왔습니다. 콜라주를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이었는데, 기획의 취지를 잘 담고 있으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마음에 들었죠. 특히 만육천 원 남짓한 작품임에도 보증서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준비해 오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보증서까지 준비하신 이유가 뭐예요?"라는 제 질문에 루나양 작가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글쎄요. 제가 나중에 더 유명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이 작품도 유명해지지 않을까요?"
그 유쾌한 대답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작품 한 점이 만 원 남짓이라는 사실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결국 컬렉팅은 가격보다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와 그것을 마주하는 컬렉터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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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Draw page 9th 전시에서, 2025. (우)루나양 작가의 작품과 보증서.
목장갑은 결국 사지 못했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문장은 지금도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침묵〉은 포기했지만, 그날 딸이 같은 그림 앞에 멈춰 섰던 순간은 아직도 선명하네요. 루나양 작가의 만 원짜리 그림에는 보증서가 딸려 왔습니다.
소유하지 못한 것들, 혹은 소유했지만 작고 가벼운 것들. 그것들은 제게 작품보다 더 오래 남았습니다. 어쩌면 컬렉팅은 무엇을 갖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오래 기억되는지를 배우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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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ference Note
- 소유하지 못한 작품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 컬렉팅은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무엇을 오래 기억하는가를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 다음 호에서는 김정은 디렉터가 해외에서 만난 사진 컬렉터와 컬렉션을 통해, 사진을 수집한다는 일의 또 다른 의미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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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는 어떤 의미인가요?
‘참조하라’는 뜻의 더레퍼런스 뉴스레터 약자입니다
아티스트처럼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공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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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레퍼런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4길 44, 2F T. 070-4150-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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